하워드 블랙번의 삶은 인간이 지닌 순수한 의지의 힘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1883년 어로 작업 중 발생한 조류 조난 사고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잃는 극심한 동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명에 굴하지 않고 미국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거듭났다. 모험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을 품었던 그는 결국 바다로 돌아가 단독 대서양 횡단에 두 차례나 성공하며 신체적 한계가 자신의 불굴의 투지를 막을 수 없음을 세상에 증명했다.
1859년 노바스코샤주 포트 메드웨이에서 태어난 블랙번은 바다에서의 삶을 꿈꾸며 18세가 되던 해 매사추세츠로 이주했다. 수산업계에 입문한 그는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의 해양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선원으로서의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의 전설적인 일화는 1883년 감행된 혹독한 어로 작업 중에 시작되었다. 어선 그레이스 L. 피어스호에서 작업하던 도중, 블랙번과 그의 동료 토마스 웰치는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겨울 폭풍으로 인해 본선과 고립되고 말았다. 장갑을 잃어버린 후 손이 기어이 마비될 것임을 직감한 블랙번은 노를 계속 저을 수 있도록 자신의 손가락을 노 모양으로 구부려 얼어붙게 만드는 결단을 내렸다. 또한 양말 한 켤레로 한쪽 손을 보호하려다 발이 추위에 노출되었고, 결국 손가락을 구하지 못한 채 발가락에까지 심각한 동상을 입게 되었다.
이튿날 동료 웰치가 추위와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으나, 블랙번은 동료의 시신을 버리지 않고 배에 실은 채 이동을 이어갔다. 음식과 휴식도 없이 5일 동안 처절한 사투를 벌인 끝에 그는 뉴펀들랜드 해안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목숨은 건졌으나 동상이 너무 심하게 진행된 탓에 결국 모든 손가락과 몇몇 발가락, 양쪽 엄지손가락의 마디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글로스터로 돌아온 블랙번은 지역 사회의 영웅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주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번창하는 선술집을 운영하게 되었으나, 그 속에서도 모험심은 식지 않았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소식을 접한 그는 일반적인 육로 대신 케이프혼을 돌아서 가는 혹독한 해로를 선택했다. 비록 동업자들과의 갈등과 목재 무역을 위한 오리건 방문 등으로 인해 산프란시스코에서 여정을 중단하고 금을 채굴하지 못한 채 귀향해야 했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