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계의 큰 별이 지다
전 세계 다이빙 커뮤니티가 진정한 개척자 중 한 명인 제일 패리(Zale Parry)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패리는 지난 7월 21일, 93세의 나이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녀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록적인 다이빙, 수중 사진, TV 활동, 장비 개발 및 수중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여러 세대의 다이버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다이빙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칭호로 더 잘 알려진 그녀는 레크리에이션 스쿠버 다이빙의 형성기에 이 스포츠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초창기 다이빙계를 이끈 여성 개척자
1933년 3월 19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태어난 패리는 어린 시절부터 수영을 사랑했으며, 1950년대 초반 새롭게 부상하던 스쿠버 다이빙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여성이 거의 활동하지 않던 분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빠르게 다이빙계의 선구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그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초기 업적 중 하나는 1954년에 세운 여성 스쿠버 다이빙 수심 기록이다. 당시 다이빙 장비와 감압에 대한 지식이 이제 막 발전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64미터(209피트) 수심에 도달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TV를 통해 다이빙의 매력을 전파하다
수중에서의 업적은 동료 다이버들의 존경을 얻었지만, 그녀를 수백만 명의 대중에게 알린 것은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패리는 로이드 브리지스 주연의 매우 영향력 있는 TV 시리즈 '씨헌트(Sea Hunt)'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브리지스가 다이빙의 대중적인 얼굴이 되었지만, 카메라 앞과 뒤에서 보여준 패리의 전문성은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이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실감 나는 수중 장면을 선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TV 프로그램과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자이자 수중 전문가로 활약했다.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선 폭넓은 기여
TV 활동 외에도 패리의 영향력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녀는 뛰어난 수중 사진작가이자 교육자, 다이버 안전 옹호자로 활동했으며, 스쿠버 다이빙 초창기 수십 년 동안 장비 테스트와 혁신에도 기여했다. 특히 캘리포니아 최초의 민간 고압산소치료 시설 중 하나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으며, 경력 내내 수중 사진과 해양 교육을 증진하는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녀의 이러한 공헌은 2000년 '여성 다이버 명예의 전당(Women Divers Hall of Fame)'의 초대 헌액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다이빙의 발전과 미래 세대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기회를 넓히는 데 평생을 바친 그녀의 삶을 기리는 영예였다.
다이빙계의 애도와 그녀가 남긴 유산
그녀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다이빙 업계 전반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다이빙 장비 및 마케팅 협회(DEMA)는 패리를 “전설적인 다이버, 배우, 수중 사진작가, 작가이자 옹호가로서, 그녀의 삶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중 세계를 탐험하고 보호하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다이빙 역사 박물관 역시 “그녀의 유산이 다음 세대의 다이버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줄 진정한 스쿠버 다이빙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그녀를 기억했다.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에 이토록 광범위한 족적을 남긴 인물은 드물다. 스포츠 초창기에 기록을 세우는 것부터 TV를 통해 수중 탐험을 안방으로 가져오는 것까지, 제일 패리는 스쿠버 다이빙을 소수의 전유물에서 전 세계적인 열정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그녀의 영향력은 오늘날 그녀의 뒤를 이어 바닷속으로 들어간 수많은 남성과 여성 다이버들에게서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기록이나 수상 경력을 훨씬 뛰어넘는 유산, 즉 호기심과 탐험, 그리고 바다의 경이로움을 공유하려는 평생의 헌신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