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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의 봉쇄 돌파선, 오대호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치코라호

1864년 영국에서 건조된 철제 외륜선 치코라호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의 봉쇄 돌파선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속도를 자랑했다. 전쟁 이후에는 오대호로 옮겨져 여객 및 우편 운송선으로 수십 년간 운항하며 해양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939년 침몰하기까지 약 75년간의 긴 운항 기록을 남긴 이 선박은 당대 독특한 선체 구조와 역사적 가치로 주목받아 왔다.

스쿠버타임즈

2026년 4월 7일 03:01
미국 남북전쟁의 봉쇄 돌파선, 오대호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치코라호

브렌던 베일로드(Brendon Baillod)가 소장한 6점의 스테레오 뷰(입체 사진)는 과거 슈피리어호와 온타리오호에서 운항하던 증기선 치코라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사진들은 치코라호를 '남북전쟁 당시의 봉쇄 돌파선'으로 기록하고 있다.

치코라호는 1864년 영국 버컨헤드에서 건조된 초기 철제 선체 증기선이다. 당시 남부 연합군을 위해 북부군의 봉쇄망을 뚫고 물자를 수송할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며, 시속 약 34km(21마일)의 속도를 내며 동급 선박 중 가장 빠른 기동성을 발휘했다. 길이 67m(220피트)에 달하는 이 선박은 두 개의 진동 엔진과 8.5m(28피트) 크기의 외륜을 구동하는 6개의 보일러를 갖춘 고성능 선박이었다.

1864년 4월, '치코라'라는 이름으로 영국을 떠난 이 선박은 버뮤다를 거쳐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과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으로 향하며 북부군의 봉쇄망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그러나 봉쇄 돌파선으로서의 임무는 짧았고, 전쟁이 끝난 1865년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에 정박하게 되었다.

1867년 10월, 캐나다 토론토의 선주들에게 인수된 치코라호는 온타리오주 콜링우드와 슈피리어호 항구 사이를 운항하기 위해 재편성되었다. 당시 온타리오호와 이리호로 진입하기 위해 몬트리올에서 선체를 두 부분으로 절단하는 공사가 진행되었고, 이후 버팔로에서 데이비드 벨에 의해 여객 및 우편 운송을 위한 개조 공사를 거쳤다. 이때 6개의 보일러 중 4개가 제거되었다.

1868년부터 1876년까지 치코라호는 콜링우드와 슈피리어호 사이를 빈번히 오갔으며, 캐나다 총독 더퍼린 경의 전용 요트로 임시 활용되기도 했다. 이후 1877년부터는 주로 이리호와 온타리오호 등 하류 호수에서 운항을 지속했다. 철제 선체 덕분에 매우 긴 수명을 자랑한 치코라호는 1890년 토론토에서 엔진을 교체했다.

치코라호는 1920년까지 온타리오호에서 운항하다가 철제 바지선으로 개조되어 '워렌코'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39년 세인트로렌스강 하우섬 북측에서 침몰할 때까지 예인선 역할을 수행했으며, 인양 후 해체되면서 총 75년이라는 긴 역사를 마감했다. 치코라호는 일반적인 오대호 선박들과 달리 앞뒤로 배치된 두 개의 굴뚝 덕분에 식별이 용이해 생전 많은 사진 자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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