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빅만의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 복잡하고 민감한 수중 인양 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군 구조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일본의 ‘지옥선’ 중 하나인 오료쿠 마루호 난파선에 대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이버들이 역사적 난파선에 진입해 유물을 수습하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현대 수중 인양 다이빙의 기술적·윤리적·감정적 복합성이 내포되어 있다.
오료쿠 마루호는 1944년 12월, 참혹한 환경 속에 연합군 전쟁포로들을 이송하던 중 침몰했다. 공격 과정과 그 이후 수백 명의 포로가 사망한 이 비극적인 장소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적지이자 동시에 엄숙한 전쟁 묘지이다. 현재 이 임무는 실종된 미군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임무를 맡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주도하고 있다. 다이버들은 선체 내부에서 신중하게 유물과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이는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이나 일반적인 난파선 탐사와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모든 움직임이 법의학적 프로토콜과 전몰자에 대한 예우, 그리고 군사 작전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엄격하게 통제된다.
수빅만 일대는 시야를 순식간에 0으로 만드는 미세한 침전물과 붕괴 위험이 있는 내부 구조물, 좁고 복잡한 탈출 경로 등으로 인해 다이빙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여기에 법의학적 인양이라는 특수 임무가 더해지면서 다이버들은 단순히 기록하는 단계를 넘어, 층별로 퇴적물을 발굴하고 신원 확인을 위한 맥락을 보존하며 유해 오염을 방지하는 등 ‘수중 외과 수술’에 가까운 정밀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2026년 초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수년간의 사전 현장 조사와 계획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난파선 다이빙에서 흔히 발생하는 즉흥적인 진입 대신, 이번 작전은 정밀한 현장 매핑과 통제된 발굴 그리드, 퇴적물 관리 전략을 통해 실수를 최소화하고 있다. 사소한 퇴적물 교란조차 중요한 역사적·신원 확인 증거를 영원히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전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기술적인 면보다 윤리적인 면에 있다. 오료쿠 마루호와 같은 난파선은 단순한 다이빙 포인트가 아닌 최종적인 안식처이다. 모든 유물과 유해 파편은 인간의 역사와 연결된 증거로 취급된다. 이는 전 세계 다이빙 커뮤니티에 ‘탐사와 훼손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책임감 있는 현장 접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번 작전은 향후 수중 고고학, 전쟁 묘지 보호, 그리고 윤리적 다이빙 표준 수립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